어렵다고 불편한 사이는 아니에요.
저마다 다른 조건과 상황속에 살아가는 사람들...존경 받지 못 할때 화가 나는 거라며,남편을 하늘 모시듯 하라던 엄마에게 '옛날사람'이냐구 짜증내던 기억이 나요.
32년전 상견례에서도 "쌀 한번 씻어 본 적 없는 막내딸이니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 주세요"해서 가정부로 취직 시키는거냐며 말다툼했지만~內心 딸을 통해 며느리에게 바라는 마음 이었을거에요.
'그 엄마의 그 딸'이라 내 삶의 방식은 결혼과 동시에 한꺼번에 개조 되었고,남편을 동등한 선에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웬지 모셔야 하는 윗분이 되었으니 원!
딸 같은 며느리 없고, 아들같은 사위 없다지만...조선시대 여인상 같은 그런 엄마 덕분으로 장모님한테 최선을 다한 남편이라는 건 인정하고 감사해요.
성남에 개원한 셋째 아주버님 치과에 모시고 다니면서 91세까지 틀니없는 건치로 사용 하셨구요,
허리를 크게 다쳐 한 발짝도 못 움직였을땐 2주동안 한의사 친구의 매일 왕진으로 다시 걸음할 수 있었지요.
넘어져 부서진 팔 응급 수술 할 때도 젤 먼저 달려간 남편이에요...(그땐 119도 없었고,인터넷도 없었고 휴일 진료하는 병원이 없어 응급실에서 대기해야하는 시대였어요.)
지나고보니 큰 사고 처리는 남편이 率先했으니 은혜갚은 사위에요.
미리암 엄마 가르침따라 친구같은 남편 대신 윗 어른 모시듯 어려운 남편이지만...금혼식까지 건강 보필 잘 하려구요.